주최/주관 박주원
2023 언폴드엑스
기획자캠프 선정프로젝트
이 전시는 작가들과 함께한 기록과 기억의 조각들로부터 시작된다. 우리는 약 3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워크숍과 작업실 방문 등을 하며 함께 시간을 보냈다. 미술계 분들과 8회의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기술과 예술’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고, 워크숍이 마무리된 후에는 각 작가의 작업실을 방문하면서 작업과 작가의 삶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예술과 기술의 융합’를 주제로 하는 프로젝트인 언폴드엑스 기획자캠프의 결과물로서 우리가 전시를 보여주고자 할 때 가장 고민이 되었던 것은 ‘예술’과 ‘기술’이라는 각각의 커다란 의미를 지닌 단어가 이질적으로 돋보이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 만남의 초반에는 문자 그대로의 ‘예술과 기술의 융합’이라는 것에 생각이 조금 갇혀있었던 듯 하다. 글로 쓰여 있는 것에 사람들은 쉽게 현혹되기에, 예술/기술/융합이라는 단어 중 어느 한 단어에 부등호가 쏠리는 의미 부여를 제거하고 세 단어의 접점을 찾을 수 있도록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함께 시간을 보내며 관찰자 입장에 있던 나는 작가들이 ‘기술’이라는 낯설고도 모호한 단어 앞에서 느끼는 오해와 어떤 두려움을 거두고 다시 ‘예술’이라는 본질적 단어에 집중하는 것을 목격하였다. ‘예술/기술/융합’이라는 비닐 장막 같은 단어들이 걷히자, 뒤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있다가 다시 등장한, ‘작가가 생각하는 예술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작가들은 성실히 마주했다. 만남이 마지막으로 향할수록 작가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예술/기술/융합을 뒤섞어 다시 본래 이야기들을 엮어내고 있었다. 시대가 파도처럼 밀려 보내준 거대 단어 앞에서 우리는 조금 겁을 먹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언어로 명명되기 이전에 이미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기술을 자신이 뜻하는 바를 표현하기 위해서 사용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일곱 명의 작가가 자신의 이야기들을 솔직하게 나눈 시간의 조각들은 또 다르게 엮여 새로운 조각모음으로 치환된다.
이번 전시에서 주로 사용한 기술은 3D 스캔/프린팅, VR과 전통 조각술이다. 3D 스캔 작업을 하면서 보다 정교한 결과물을 위해서 역설계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이는 원본을 스캔한 후 사물 혹은 물질을 재구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스캔과 역설계 과정을 통해 전통적 조각들은 작가들의 주관적 편집을 거쳐 재맥락화된다. 각기 다른 생각과 필요성, 다른 재료들로 3D 기술을 사용한 작가들의 작품은 각자의 성격대로 각자의 모습을 하고 나온다. 또한 screenxyz, SUJANGGO수장고와의 협력을 통해 온오프라인에서 느낄 수 있는 조각의 성질들을 전시 안에서 배열해보고자 한다. VR 역시 현시하고 있는 공간 자체를 프로그램 안에서 실제에 가깝게 재맥락화하여 보여준다는 특성이 있다. 문래예술공장 갤러리 M30에서 이뤄지는 전시와는 또 다른 맥락으로 진행되는 가상공간 안의 VR 전시를 통해, 임시적이고 가변적인 공간에서 전통적 성질을 벗어난 조각이 주는 흥미로운 지점들을 관람객들과 함께 공유하고자 한다. 또한 몇 년간 온라인 공간에서의 조각 아카이브에 관해 탐구해온 SUJANGGO수장고 온라인 사이트에서 조각모음 참여작가들의 작품들을 3D 스캔본으로 보고 또한 관람객 스스로 다른 형질로 변형시키거나 가공하게 함으로써, 기술을 사용했을 때의 조각의 시각성과 촉각성에 대한 사유를 전시에 오는 이들 혹은 온라인으로 작품을 만나보는 이들과 함께 나눠보고자 한다. screenxyz의 화면과 SUJANGGO수장고 사이트에서 만나는 온라인상의 조각들과 갤러리 M30에서 전시되는 조각들의 속성이 다르기에, 이를 통해 실재하는 조각은 무엇이며 또한 원본은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로의 확장을 유도해보고자 한다. 한편 작가들이 전시를 준비하며 나온, 그들의 작업 전반을 설명하는 부산물의 조각들은 전시장 밖 아카이브테이블에 또 다른 맥락으로 전시된다. 이로써 전시는 4개의 채널(갤러리 M30, SUJANGGO수장고 온라인사이트, screenxyz의 VR화면, 아카이브테이블)이 혼재되며,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변주되는 차원에서 조각에 대한 이야기들을 동시에 감각하게 한다.
곽인탄은 유기적인 구조 위에 다양한 조각들이 자율적으로 변화하며 유동하는 조각을 선보인다. 무수히 많은 작은 조각들로 이루어진 곽인탄의 조각은 그 자체로 조각적 유희의 장이 된다. 실시간으로 제작되는 작은 조각들은 우연적으로 재배열되어 주변을 교차하며 공간으로 연장된다. 작가의 작품에 있는 작은 조각들은 ‘저글링’이라고 불리는데 묘기를 부리듯 서커스 무대와 유사하게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이제 작가의 조각은 여러 조각으로 분해되고 허공에서 무대를 장식함으로써 유희의 장이 되는 것을 시도한다.
안민환은 조각이라는 매체가 풍경을 담을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시작으로 여백과 페인팅 그리고 자연의 풍경을 조각에 결합시킨다. 이를 바탕으로 단일조각의 확장 가능성을 모색하는 ‘풍경조각’ 시리즈를 연구하고 있다. 〈범굴암 5.8개척〉은 암벽등반을 통해 바위를 스캔하며 왜곡된 3D 데이터와 텍스쳐 풍경을 재구성한다. 〈범굴암 5.8개척 분재〉는 등반 당시의 자연에 압도되던 무력감에서 시작한 작품이다. 작가의 작품에 표현된 자연의 순간순간의 간극들은 그 자체로 작가의 여정과 감정을 말해주는 동시에 풍경을 다르게 보기를 유도한다.
오제성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온 비지정문화재를 소재로 동시에 공존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새로운 서술과 역사화를 시도한다. 〈갓트론〉은 다양한 거석의 접목을 통한 변신 거석으로 비지정문화재의 역사를 재구성한다. 한편 AI 이미지 형성 기술을 통해 명령어가 변환되어 만들어진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Auguste Rodin)의 이미지와 그 이미지가 언어 합성 기술을 통해 로댕의 어록을 낭독하는 모습을 함께 보여주는 〈죽은자가 말을 한다〉는 명령어와 데이터로 깎고 새겨진 조각의 모습과 의미를 추적한다.
장준호는 〈신상〉을 통해 죽음과 잊힘을 붙잡고자 하는 작가의 마음에 집중한다. 작업실에 방문하는 사람들을 기억하고 싶은 마음으로 작가는 그들을 디지털 캐스팅한다. 트래킹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모델에게 움직이지 않고 잠을 자는 모습의 동작을 주문하기에, 구현된 캐스팅 덩어리는 현실의 데스마스크(death mask)와도 같은 모습을 한다. 애초 조각에서 인체상을 빼고는 말할 수 없기에, 작가의 절단된 인체 조각은 조각을 만들기 시작했던 인간 본연의 마음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게 한다.
정성진은 실재와 가상의 구분이 모호해진 흐름 속에서 물성을 기반으로 한 조각이 디지털, 미디어의 인식 전환을 통해 재구축되는 방식을 고민하고 실험한다. 모듈러 조각 방식을 도입한 작가의 조각은 유동적 결합을 통해 한시적으로 재배치된다. 가변성이 바탕이 되는 조각들은 존재하는 현상과 이야기들을 무한히 교배하면서 호환되고 확장된다. 〈카운터 가제트〉는 기술과 조각의 상호보완적 균형을 생각하며 헤파이스토스(Hephaestus)와 시바신(siva)이라는 창조와 파괴의 신에 관한 이야기를 혼종적 내러티브로 표현한 작품이다.
주슬아는 기록 사진의 포즈에 관심을 가지고 작업을 시작하여 몸을 땅에 기대는 과정을 기록하기 위해 누워있는 이미지를 수집하고, 이를 인쇄한 종이에 유토를 덧발라 스캔해 다시 인쇄하는 과정을 거친 〈Reclining〉을 선보인다. 몸을 땅에 기대는 포즈를 3D 스캔하여 움직임으로 인한 노이즈를 포함한 형태를 3D 프린트로 출력했으며, 이 과정에서 몸의 질감을 연상시키는 재질을 사용하였다. 이것은 몸과 땅 사이의 관계와 유사하게 물질 간의 상호작용에 대한 작가의 고민을 반영한 것이다.
홍자영은 관념적인 자연의 풍경을 3D매체와 왁스 등을 통해 구현한다. 〈산수조각〉에서 작가는 범관의 계산행여도와 작가가 직접 경험한 풍경을 참고하며 만든 이상향적인 산수화를 모래로 깎아 만들고 3D스캔, 프린트하여 원본이 보존되지 않는 조각을 전시장에 옮기는 시도를 한다. 창경국 자경전터에 있는 괴석 받침을 스캔해 좌대로 만든 〈팔각괴석받침〉과 산과 구름, 물의 형상을 왁스로 그린 〈The Gate of Wind and Water〉을 함께 선보인다. 이를 통해 작가는 시점의 다변화가 가능한 상상과 실제의 혼합체인 현대적 산수화를 제시한다.
- 박주원
안민환, 〈범굴암 5.8개척 분재〉, 2023, 석고, 나무, 철, 실, 150 × 50 × 110 cm
An Minhwan, Beomgulam 5.8 Pioneer Bonsai, 2023, plaster, wood, steel, thread, 150 × 50 × 110 cm
주슬아, 〈Reclining〉, 2023, 3D프린트한 레진, 유토, 폴리모프, OHP필름에 레이저 프린트, 400 × 350 × 350 cm
Joo Sla, Reclining, 2023, 3D printed resin, oil clay, polymorph, laser printed OHP film, 400 × 350 × 350 cm
홍자영 〈山水彫刻〉, 2023, PLA, 7.5~41 × 22~40 × 18~32 cm (4)
Hong Jayoung, San-su sculpture, 2023, PLA, 7.5~41 × 22~40 × 18~32 cm (4)
홍자영, 〈팔각괴석받침〉, 2023, 혼합재료, 38 × 93 × 93 cm
Hong Jayoung, Octagonal pedestal for oddly shaped stone, 2023, mixed media, 38 × 93 × 93 cm
홍자영 〈The Gate of Wind and Water〉, 2023, 타일, 왁스, 아크릴, 40 × 40(12) cm, 200 × 160 cm (전체)
Hong Jayoung, The Gate of Wind and Water, 2023, tile, wax, acrylic, 40 × 40(12) cm, 200 × 160 cm (full size)
곽인탄, 〈저글링〉, 2023, 혼합재료(레진, 석고, PLA, 톱밥, 철, 스텐), 가변설치
Kwak Intan, Juggling, 2023, mixed media(resin, plaster, PLA, sawdust, steel, stainless steel), dimensions variable
장준호, 〈신상〉, 2023, 나무, 88 × 68 × 58 cm
Jang Junho, Sinsang, 2023, wood, 88 × 68 × 58 cm
안민환, 〈범굴암 5.8개척〉, 2023, 석고 위 아크릴, 철, 아이너트, 자일, 200 × 60 × 120 cm
An Minhwan, Beomgulam 5.8 Pioneer, 2023, acrylic on plaster, steel, eye nut, seils, 200 × 60 × 120 cm
정성진, 〈카운터 가제트〉, 2023, PLA, 레진, 에폭시 퍼티, 스티로폼, 철, 자석, 폴리스티렌,디지털 프린트, 스타코, 275 × 260 × 140 cm
Jeong Seongjin, Counter Gadget, 2023, PLA, resin, epoxy putty, styrofoam, steel, magnet, polystyrene, digital prints, stucco, 275 × 260 × 140 cm
오제성, 〈죽은자가 말을 한다〉, 2023, 모니터, 카트, AI를 이용한 영상, 가변설치
Oh Jeisung, The Dead Speak, 2023, monitor, cart, video using AI, dimensions variable
오제성, 〈갓트론〉, 2023, PLA, 철, 와이어, 가변설치
Oh Jeisung, Godtron, 2023, PLA, steel, wire, dimensions variable
조각모음 in SUJANGGO수장고
Defragmentation in SUJANGGO
조각모음 VR (잠실 생태화공원 ver.)
Defragmentation VR (Jamsil Ecological Park ver.)
조각모음 아카이브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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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언폴드엑스 기획자캠프 선정프로젝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