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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오제성
202312 × 12 × 3 m바위, 석고2 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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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의 미지정 문화재를 찾아다니는 일은 인디에나 존스나 툼 레이더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역동적이지 않다. 오히려 장거리 운전으로 몸은 무척이나 피로하고, 차에서 내려서도 네이버 지도와 아마추어 연구가들의 블로그 글에 의지해 여기저기 헤매야 한다. 더위, 추위, 우천, 모기, 풀독은 기본이고 처음 만나는 동네 주민에게 길을 묻는 것은 지금도 익숙하지 않고 어렵기만 하다. 겨우겨우 현장에 도착하면 상당히 뿌듯하지만 굴러오는 돌, 도굴꾼과의 결투, 부비트랩 따위도 실은 없다. 실로 깊숙히 고요한 동굴에 들어가는 순간이다. 일자(一者/미지정문화재)와 타자(他者/나)가 드디어 서로를 마주하는 숭고한 시간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 경험의 연속이 지루하고 건조하기 보다 심심함에 더 가깝게 느껴진다. 몇 년간 적지 않은 시간을 미지정 문화재들과 보내며 나는 그 심심함 속에서 지속적으로 작업에 대한 방법론을 바꿔왔다. 처음 스마트폰 카메라로 찍었던 대상을 디지털 카메라로, 필름카메라로, 탁본, 드로잉, 더 나아가 3D스캐너로 촬영하였고, 대상을 작업으로 구현하는 방식도 사진보고 만들기, 가상세계로 이주하기, 3D출력으로 거푸집 만들기, 세라믹 치환 등 점차 다양하게 전개하였다. 대상을 조우함에 있어 정형화된 방법론이라는 심심함에서 벗어나고자 시도하였던 것이고 그 시간은 아마도 사색의 순간이었을 것이라 믿는다. 결국 사색의 시간이 대상과 나의 관계를 다시 정립하는 계기였고 작업과 대상의 관계를 다시 고찰하게 하는 동력이었다. 그리고 이 심심함과 움직임의 궤적을 또 다시 돌아보며 <Connectome>(2022)연작을 구상하였다. 기존 작업의 주제와 형식에서 발생하는 관성에서 벗어나고자 하였고 오히려 깊고 깊은 한적한 심심함으로 향하는 길목에 놓이기를 바라는 작업이다. <Connectome>연작은 미지정 문화재들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을 서술하는 방식으로 전개하였다. 서술이라는 표현이 부정확하지만 행위와 과정 중 순간적으로 보고 느꼈던 것을 흙 작업으로 나열하고자 하였기에 서술이라는 단어가 가장 가깝게 다가온다. 북한산 승가사 가는 길에 만난 산개들, 죽림굴 대재 공소의 성심, 아양동 보살입상 촬영 당시 공수를 주신 보살님, 어느 산악회에서 산속에 표시한 산불조심 리본, 달마산 미황사에서 만난 고양이, 비 오는 날 초전리 미륵불에 붙어있던 수많은 개구리들, 이 모든 순간들이 심심한 산책자를 멈추게 하는 요소였다. 한병철이 <피로사회>에서 언급한 ‘깊은 심심함’과 ‘사색’에 관해 진심으로 수긍하기 시작한 것도 위의 순간들을 구현하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걷고 있는 사람이 걷는 것이 심심하다는 숙고가 없었다면 그 뒤에 달리기, 뜀박질도, 높이 뛰기도 없었을 것이고 더 나아가 춤이라는 전혀 다른 궤적의 움직임도 없었을 것이다. 미지정 문화재를 만나야 한다는 목적이 다분이 직선적이었다면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효율적 움직임은 춤이라는 복잡한 곡선이다. 따라서 본 연작은 그 춤을 서술하기 위함이고 다시 그 춤을 복기하고 해석하기 위함이다. 때로는 이렇게 작업하고 있는 나의 신경계에 집중하여 그 안에 존재하는 모든 심심한 신경 세포들이 외부의 사건과 어떻게 반응하는지 전체적 지도를 밝히고 싶기도 하다. 그렇게 사색을 통한 초연함과는 거리가 먼 춤의 예술은 없는 것일까.

오제성

오제성은 현대적 의미의 설화와 전설을 담은 사진, 영상, 조각을 만든다. 2020년부터 전국 각지의 사찰, 기도터, 교회, 성당을 방문하며 비지정 문화재에 대한 사진 촬영, 3D 스캔을 진행하고 있고 답사를 통해 얻은 데이터를 소프트웨어상에서 변형하여 물리적 형태로 환원한다. 또한 자신 주변의 상황, 기억, 공간 사이에 형성되는 관계를 데이터와 연결 짓고 서사가 있는 영상을 만든다. 국민대학교 미술학부에서 입체미술 전공 학·석사, 미국 로스엔젤레스의 오티스 미술대학(OTIS College of Art & Design)에서 순수미술 석사를 수여받았다. 일상, 경험, 기억의 관계를 해석한 개인전 《The Motion Lines》(송은아트큐브, 서울, 2019)를 개최하였고 비지정 문화재를 주제로 참여한 《페이지 너머》(대전시립미술관, 대전, 2022), 데이터와 비물질 조각을 주제로 선보인 《조각충동》(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서울, 2022) 등의 단체전을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