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스피돈나(봉합선이 선명한)>의 몸을 깎을 때, 어렴풋한 형상만 계속 떠오르고 걔한테 ‘스피돈나’라는 이름이 없던 때, 기계 사고가 있었다. 나무의 공간을 덜어낼 때 쓰는 조각기를 수리센터에 보낸 후, 철공용 날을 끼운 그라인더를 조각기 대용으로 쓰고 있었다. 안좋은 일을 털어내려고 아침부터 프리재즈를 엄청 크게 틀어놨던 날, 마음이 무척 어지럽고 급했다. 나무의 물성과 나의 리듬이 평소같지 않았고, 나무의 밀도가 내 조급한 속도를 밀어내는 저항이 유별나게 느껴졌다. 어느 순간 그라인더 날이 나무에서 튕겨나와 내 팔등을 파냈다. 작업실 바닥이 피바다가 됐고.. (생략) 여러명의 의사들이 내 벌려진 환부 사진을 개인 소장하기 위해 핸드폰을 들고 왔다 갔다. 수술방에 들어가니 마니 하며 응급실을 전전한 다음 날, 결국 순천향대 병원에서 너덜너덜하게 털려나간 근육을 그러모아 팔등을 꼬맸다. 동네 정형외과 선생님이 꼬맨 자리를 보시더니 이건 코리안 수쳐(suture)가 아닌 아메리칸 수쳐고, 최대한 흉터가 덜 남는 바느질로 잘 꼬매졌다고 했다. 그럼에도 내 왼 팔은 봉합선이 무척 선명한 팔이 되었다. 그 다음 주에 한 손으로 나무를 깎을 수 있는 가벼운 전기톱을 선물받았다. 그 톱으로 나는 그 누구의 속도도 아닌 자신의 속도를 쟁취하는 묵직한 발들을 만들기로 했다. 작업이 끝나고도 가끔 이 비대칭 발의 주인인 '스피돈나'의 전신을 상상해보곤 했다.
이유성
이유성은 조각적인 행위와 질감들을 충돌시키면서, 속도, 감정, 에고, 신체의 물신적 인식 등 껍질이 있는 개념과 단어들을 살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