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년간 나는 작업을 통해 매스와 물성을 탐구하는 조각을 제작해왔다. 이는 모더니즘 시대가 요구했던 과거의 과제로 여겨질 수 있지만, ‘조각’의 정의와 범위, 경계가 해체되고 모호해진 오늘날 나는 다시 온전한 조각의 영역을 찾아내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 특정 형상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조각과 재료를 이용하는 일반적인 과정에서 벗어나 재료와 나, 그리고 그 사이를 둘러싼 환경의 관계를 조각적으로 표현한다. 서울이라는 대도시에 사는 작가의 입장에서는 조각을 제작하기 어려운 여러 현실적 조건들을 마주하기 마련인데, 나는 조각만이 가질 수 있는 가치와 조각가만의 역할을 찾고자 그러한 어려움들이 맞서고 방안을 모색하는 것 까지 작업의 일부로 수용하기로 했다. 나에게 있어 조각의 가치는 그것의 노동집약적이고 비효율적인 생산 과정에 있다. 가볍고 쉽고 저렴하고 효율적인 것들을 향해 가는 경향 안에서 그 가치와 문법을 따르지 않는 무게감을 선보일 수 있는 게 조각과 조각가의 사회적 역할이라고 믿는다.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돌과 석고와 같은 전통적인 재료를 이용해 크고 무겁고 제작 과정이 번거로운 조각을 나만의 호흡을 따라 만들고 있다. 재료에 대해 공부하는 시간을 가지고, 몇 안남은 석공을 찾아가고, 도시 외곽에 위치한 외딴 폐가에서 작업을 하고, 건물 안으로 진입하지 못하는 조각들을 전시할 대안적 공간들을 찾아 나서는 과정을 겪으며 나의 조각은 밀도를 쌓아가고 있다.
홍기하
홍기하는 ‘조각’의 범위와 경계를 탐구하며, 조각 재료의 물성과 작가의 신체가 관계 맺을 때 나타나는 조형성을 찾아가고자 한다. 주요 개인전으로 《Vanilla II》(레인보우큐브, 2022), 《Solo》 (서울시 마포구 와우산로 94/ 보안 1942, 2021) 등이 있으며, 《조각 여정: 오늘이 있기까지》(WESS, 2022), 《조소의 즐거움》(청년예술청 SAPY, 2022)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